Subido por vbachani

Korean Waugh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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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영어영문학󰡕 제61권 4호
(2017년 11월) 117-43
Modern Studies in English Language & Literature
http://dx.doi.org/10.17754/MESK.61.4.117
모더니스트 풍자소설로 읽는
에블린 워의 󰡔사랑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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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대학교)
Park, Eun Kyung. “A Reading of Evelyn Waugh’s Modernist Satire in The Loved One.”
Modern Studies in English Language & Literature. 61.4 (2017): 117-43. This paper focuses
on Evelyn Waugh’s multi-layered satire uncovered in The Loved One: A Tragedy of an
Anglo-American, a very puzzling, and rarely studied novelette, particularly in Korea. Waugh’s
main object of ridicules in his burlesque is a materialized and meaningless modern world.
Especially in the employment of Catholicism Waugh exposes false consolation and sham love
within a hypocritical culture embodied in the Hollywood film industry and in a funeral
company that is, ironically named, Whispering Glades. Waugh’s catholic allusions reveal
complex and highly performative turns of dark humor, unveiling an apocalyptic vision of
postwar Western culture, where human beings are merely reduced to consumables, living
corpses, and even animals. Deeply rooted in fantasies of love and immortality, this modern
society blurs the distinction between the living and the dead, and between humans and
animals as well. Exploring the dynamic between love and death, pivoting around the main
characters, the most important being Dennis Barlow, Waugh unfolds his double-edged satiric
vision. Dennis is a personification of Waugh’s cynical and detached viewpoint, while he
becomes the main target for Waugh’s most ironic satire, as he is being inextricably immersed
in the deadly culture. Waugh’s modernist satiric approach is an envisioning of the ‘loved
one’ within a grotesque and comic choreography of love and mortality, which both expresses
and engenders moral outrage. (Chungnam National University)
Key Words: Evelyn Waugh, The Loved One: A Tragedy of an Anglo-American, Catholic
allusions, modernist satire, dark humor
I. 들어가며
에블린 워(Evelyn Waugh 1903-1966)의 중편소설 󰡔사랑했던 사람: 영국계
미국인의 비극󰡕(The Loved One: An Anglo-American Tragedy 1948)1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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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번역부터 난감하다. ‘the loved one’은 ‘사랑받은 사람,’ 혹은 보다 자
연스럽게 바꾸어 ‘사랑했던 사람’으로 번역할 수 있다. 또한 마이클 브레넌
(Michael G. Brennan)이 지적한대로 ‘the loved one’은 “시신을 칭하는 미국
인들 특유의 완곡 어구”(97)로서, 이 이야기가 캘리포니아의 공원묘지를 주 배
경으로 펼쳐지는 점을 고려하면, ‘고인’(故人)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할 수 있
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제목의 의미는 단일한 어구로 수렴하여 확정하기
어렵다.2 이 작품에서 소설의 단골 소재인 사랑과 죽음이 아이러니 가득한 서
사 속에서 다루어지고, 사랑의 행태와 죽음의 속성에 내재한 복합적 의미와 현
대 사회와 얽힌 여러 문제가 탐구되고 있어, ‘연인’과 ‘고인’은 그 의미가 중첩
된다. 또한 이 이야기에서 진정 ‘사랑하는’ 혹은 ‘사랑받는’ 인물이 등장하는지,
그 역시 애매하다. 제목의 의미 탐구는 작품 전체의 줄거리 뿐 아니라 냉소적
인 화자의 시각, 나아가 작가가 추적한 현대 사회의 문제가 집약되어 있는 이
풍자 소설을 고찰하는 데 있어 흥미로운 실마리를 제공한다.
전쟁 중에 펴낸 시집으로 주목을 받은 영국 청년 데니스 발로우(Dennis
Barlow)가 종전 후에 시인 P. B. 셸리(Shelley)의 삶을 영화화하려는 미국 메
갈로폴리탄(Megalopolitan) 영화사의 초청을 받아 캘리포니아(California)로 건
너와 겪는 경험이 이 소설의 주요한 내용을 이룬다. “특유의 초조함이 감도는
불안”(LO 30)을 내재한 미국 할리우드 영화 산업과 체면을 내세우며 허세를
부리는 도미(渡美) 영국인 집단의 이야기가 앞부분의 주요한 내용을 차지한다
면, 뒷부분은 할리우드 영화계를 떠나 데니스가 일하게 된 애완동물 납골당인
‘더 행복한 사냥터’(The Happier Hunting Ground)와 데니스가 구애하게 되는
여성 에이메 타나토제노스(Aimée Thanatogenos)가 시체 화장사(化粧師)로 일
하고 있는 인간 장례업체인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Whispering Glades)를 중
1
이후 󰡔사랑했던 사람: 영국계 미국인의 비극󰡕은 편의상 부제목은 생략하고, 󰡔사랑했던 사람󰡕으
로 축약한다. 인용 시 괄호 속에 LO로 표기하며, 쪽수만 명기한다.
2
이 소설을 번역한 이향자는 1993년 번역본의 제목을 원제와는 무관하게 󰡔가짜 시인과 사체
미용사󰡕로 바꾸었는데, 원래 제목의 정확한 번역이 어려울 뿐 아니라 오해의 여지가 다분하며 흥
미를 끌기에도 부족하다고 판단한 데 기인한 듯하다. 이향자의 제목은 이 소설을 타인의 시를 표
절하며 구애하는 시인인 남성 인물과 상조(喪助) 회사에 근무하는 여성 인물의 로맨스에만 초점을
맞춘 이야기로 호도할 우려가 있다. 다층적인 측면에서의 현대적인 풍자성이 간과 되어, 이 작품
의 의미가 축소될 위험성이 다분한 것이다.
모더니스트 풍자소설로 읽는 에블린 워의 󰡔사랑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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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으로 펼쳐지는 데니스의 기이한 ‘로맨스’가 주를 이룬다. 할리우드 영화계와
재미(在美) 영국인들을 겨냥한 풍자가 주를 이루는 전반부는 오랫동안 미국의
영화산업에 종사해 온 영국인 프란시스 힌슬리 경(Sir Francis Hinsley)의 자
살로 일단락된다. 에이메를 향한 데니스의 애정 공세와 더불어, 에이메를 둘러
싸고 사체 방부 처리 전문가인 조이보이 씨(Mr Joyboy)와 데니스가 삼각관계
를 이루는 뒷부분의 이야기는 에이메의 자살로 정점을 이룬다.
얼핏 이 이야기는 비극적이다.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주요 배경인 영화
산업의 메카 할리우드와 동물 및 인간의 사후 절차를 총괄하는 장례업체는 공
통적으로 사랑과 죽음의 판타지를 제공하고, 종교의 역할을 대행한다. 이 소설
의 부제 ‘영국계 미국인의 비극’(An Anglo-American Tragedy)은 작품의 비
극성을 제시하지만, 제목과 마찬가지로 이는 상당한 애매함과 아이러니를 내포
한다. 헨리 제임스(Henry James)의 국제 주제를 다룬 소설을 연상시키지만,
교양 있고 능란하지만 부도덕한 데니스와 순진하고 고결한 미국 처녀 에이메
의 사랑과 비극으로 이 이야기는 단순화되지 않는다. “미국적 순진함과 유럽적
경험”(LO 143)의 이분법적인 틀은 견지되지 않는다. 또한 이들의 ‘로맨스’ 이
야기에 죽음이 끼어들지만, 이 작품에는 사랑과 죽음이라는 단어에 내포된, 통
상적인 의미에서의 ‘비극적 사랑’은 없다. 데니스와 에이메의 ‘로맨스’는 에이
메의 자살로, 나아가 진정한 사랑의 부재로 종결지어지기에 ‘비극적’이라는 단
어로 수식할 수 있겠지만, 이들의 로맨스는 비애감을 주기보다는 희화화되어
기이한 희극적 여운을 남긴다.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은 애틋함과 그리움 대신
씁쓸한 유머와 황당한 희극적 정조 속에서 처리된다. ‘비극’이라기보다는 ‘희비
극’에 가까운 이 작품에서의 풍자적 색채는 역설적인 부/제목을 통해 한층 복
합적으로 전달된다.
비극적인 사건이 나열되어 있으나 애도는 두드러지지 않고, 생사 자체가 희
극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화자의 서술적 태도와 주인공 데니스의 시각이 비
극적 사건에 대해 감정적으로 개입하지 않은 채 초연한 거리를 유지하는 데
상당 부분 기인한다. 미국 영화계나 미국의 장례업체에 대한 풍자뿐 아니라,
재미 영국인들의 희화화, 미국의 납골당 종사자들을 향한 조롱, 주인공 데니스
를 둘러싼 아이러니, 나아가 현대의 사랑과 죽음에 대한 신랄한 유머와 사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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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환멸에 이르기까지, 이 작품에 내재한 아이러니, 익살, 희화화, 풍자
는 실로 다층적이다.
20세기 중반에 주로 활동하며, 풍자 작품, 리얼리즘 작품, 가톨릭 소설 등
다양한 작품 경향을 보인 워에 대한 평가는 다각도에서 이루어져 왔다. 윌리엄
쿡(William J. Cook, Jr.)이 1971년에 펴낸 책의 서문에서 서술하였듯이, 워에
대한 평가는 통일되어 있지 않다(9). “일반 독자층은 어떻게 [워의] 픽션에 접
근해야 하는지 대체로 잘 알지 못한다”(9-10)는 쿡의 언급에서 알 수 있듯이,
전기적 사실에서 엿보이는 워의 삶에서의 여러 모순적 요소가 작품 분석에 종
종 활용되면서 워는 일관된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워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
하여 2003년 쓴 글에서 로버트 데이비스(Robert Murray Davis)가 워에 대한
기존의 평가를 간략히 정리한 바에 따르면, 1940년대 중반 에드먼드 윌슨
(Edmund Wilson)을 필두로 “상류계층과 사랑에 빠진 속물”로, 작품에 “로마
가톨릭 제의의 현란한 과시적인 요소”를 도입한 작가로 지탄받았던 워는 이후
그의 “보수적 원칙과 상류 계급과의 연대가 강조”되면서 사회 풍자작품도 “반
동적이고 때론 파시스트적인 것”으로 폄하되어 왔다(10). 가톨릭으로서, 또한
나이 든 후에는 시골 신사로서의 보수적인 삶을 꾸려나간 워의 전기적 사실이
그의 작품의 부정적인 평가에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워에 대한 평가는 달라진다. 조지 맥카트니(George McCartney)가 언급했듯
이,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이르는 기간은 워가 글을 쓰기 시작한
1920-30년대와 유사하게 사회적 변혁과 문화적 혼란이 대두하며 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시기였다(xii). 데이비스가 2005년 연구서의 「서문」
(“Introduction”)에서 밝혔듯이, 1970년대 초에 텍사스-오스틴(Texas-Austin)
대학 인문 연구 센터를 중심으로 하여, 도낫 갈라거(Donat Gallagher), 알랭
블라약(Alain Blayac), 마틴 스태나드(Martin Stannard) 등이 워의 연구에 헌
신하였는데, 그 후 계승자가 없이 워에 대한 연구는 시들해졌다가 21세기에
들어서며 다시 활발해졌다(7). 워의 󰡔소식지󰡕(Newsletter)가 재탄생하고, 영국
에서 워를 다루는 웹사이트가 생겨났으며, 워의 탄생 100주년 기념 학회가
2003년에 스페인에서 열리고, 담론 및 미디어 연구가 활성화되면서 북미와 유
럽에서 워의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콘텍스트에 대한 보다 정교한 인식이 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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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게 되었다(Davis, “Introduction” 7). 100주년 기념 논문집이 나오고, 워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연구에도 불구하고, 워의 삶과 작품을 한마디로 정리하려
는 목표에 도달하기는 요원하다(“Introduction” 10)는 데이비스의 평은, 워의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총체적인 요약이나 최종적인 비평 역시 쉽지 않다는
점을 드러낸다.
국내에서 워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 작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랑했
던 사람󰡕의 고찰은 전무하다. 기독교 종교나 유교의식이 다분히 형식적으로만
작용하게 된 현대 우리 사회에서 인간의 죽음과 사후 장례의 문제가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와 같은 장례업체와 공원묘지에 주로 맡겨지게 되었다. 고품격 장
례 서비스를 약속하는 상조회사 광고를 우리는 종종 TV에서 접하곤 한다. 또
한, 애완동물이 반려동물로 여겨지며, 반려동물 호텔, 놀이터, 애완동물 장례
서비스 등이 뉴스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에 대한 고찰과
더불어, 간략하지만 신랄하게 서술된 애완동물 장례업체 ‘더 행복한 사냥터’의
이야기는 워의 현대적인 감수성을 엿볼 기회를 제공하며, 작금의 독자들의 호
기심과 흥미에 호소한다. 또한 194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의 장례 산업 세계를
인간의 죽음과 젊음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저속한 현대 사회의 축소판으로
삼아, 󰡔사랑했던 사람󰡕은 2차 세계 대전 직후의 서구를 배경으로 인간 간 소
통의 문제, 인간 간의 진정한 관계의 가능성, 로맨스의 부/적절성 등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탐구하며, 현재 우리 세계에서의 사랑과 진정한 비극의 가능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풍자 장르에서 흔히 다루어지는 사회 비판은 워에게서 한
층 복잡한 양상을 띤다. 가톨릭으로서 워가 숙고한 현대의 종교적, 도덕적 문
제는 󰡔사랑했던 사람󰡕에서 보다 다층적인 풍자와 해학의 방식 속에서 다루어
진다. 현대의 인간 및 인간관계, 그리고 사회 문제를 아이러니 속에서, 그리고
이중적, 양가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워의 풍자는 모더니스트적인 어조와 방식 속
에서 전개된다. 할리우드와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를 중심 공간으로 삼아 워가
비판한 20세기 중반 서구의 문제점들이 아이러니와 양가성, 희비극적인 어두
운 유머의 활용 속에서 폭로되는 양상과 워의 모더니스트 풍자가 지니는 의미
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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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할리우드 영화계와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에 나타난 사회 풍자
작품의 도입부에 서술된 힌슬리 경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20세기 중반,
쇠락한 서구 세계의 무기력과 권태에 찌든 한 개인을 대변하며, 할리우드로 상
징되는 세속적 권력의 희생양이다.
프랜시스 힌슬리 경의 순간적인 생기는 어느새 사그라졌다. 그는 잡지 󰡔지평선󰡕
을 내려놓고, 한때 수영장이었던 짙어지는 그늘진 부분 쪽을 바라보았다. 유약하
고 감수성이 예민하고 총명하게 보이는 그의 얼굴은 안이한 생활과 오랜 권태로
다소 무뎌져 있었다.
Sir Francis Hinsley’s momentary animation subsided. He left fall his copy
of Horizon and gazed towards the patch of deepening shadow which had
once been a pool. His was a weak, sensitive, intelligent face, blurred
somewhat by soft living and long boredom. (LO 8-9; 필자 강조)
메갈로폴리탄 영화사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는 힌슬리 경은 한때는 할리우드의
미녀들로 집이 북적댈 정도로 권력과 부를 누렸지만, “이제는 텅 비고 금이 가
있으며, 잡초만 무성하게 된”(LO 12) 그의 수영장이 암시하듯이, 할리우드 영
화계에서 퇴물로 전락해있다. 힌슬리 경이 키워놓은 흑발의 여배우 와니타 델
파블로(Juanita del Pablo)의 강인한 반파시스트적인 이미지가 더 이상 호소력
이 없는 시대를 맞아 이빨을 몽땅 빼버리고 틀니를 낀 채 미소를 띠며 붉은
머리의 순진하고 명랑한 아일랜드 처녀 베이비 아론손(Baby Aaronson)으로
억지 변신을 해야 하는 상황은 힌슬리 경의 정체성의 변화 역시 요구하나, 지
적이고 감수성 예민한 힌슬리 경은 인간의 상품화를 당연시하는 사회 속에서
냉소적 자기 비하와 무력감에 빠져 있다.
적절한 해고 통지도 받지 못한 채 영화사에서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고 나서
목을 매어 자살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마무리 하는 힌슬리 경의 세계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현대적인’ 철학자 키에르케고르
(Sören Aabye Kierkegaard)나 사르트르(Jean Paul Sartre)가 바라본 현대 불
모더니스트 풍자소설로 읽는 에블린 워의 󰡔사랑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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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한 세계를 반영하며, 그의 삶과 죽음 역시 그의 이해력이 닿지 않는 카프
카(Franz Kafka) 소설 속 인물처럼 삶의 부조리함을 재현한다.3 힌슬리 경의
죽음은 변화하는 취향과 끊임없이 바뀌는 유행의 틈바구니에서 안정된 개인의
정체성이나 확고한 신념은 부재하고 “[누가 자신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리라
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LO 9; 원문 강조) 인간관계의 불모지이자, “이 세상에
서 야만적인 지역”(LO 8)인 캘리포니아를 고발한다. 힌슬리 경을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조차 상실한 채 ‘권태’에 빠져 자살로 향하는 현대인의 실상을 보
여주며, 현대 문화의 상징으로서의 할리우드 영화계는 당대 팽배한 비인간화,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의 부재, 그리고 인간 간의 의미 있는 관계의 불가능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힌슬리 경은 할리우드를 “‘용왕(Dragon King)’”으로,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러시아인들이 몸통에서 머리를 잘라 분리하고 병 속의 피를 거기가 부어 넣
음으로써 생명을 유지시켜” 온, “고양이 냄새를 맡으면 혀에서 침을 흘리며,”
자동 반사 외엔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실험용 개의 이미지로 인식한다(LO
20). 미국 할리우드는 용으로 상징되는 악의 세계로 풍자 된다. 그 속에서 인
간의 생존은 무의미한 동물적인 자동반사 행위에 그칠 뿐이다. 삶의 의미를 찾
지 못한 채, 권태에 젖어 일상을 흘려보내는 전후 무기력한 현대인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힌슬리 경은 생존해 있지만 시체나 다름없는 인간을 대변한다. R. D.
스미스(Smith)는 미국 내 영국인 공동체의 주요 인물인 힌슬리 경과 그의 친
구 암브로즈 아버크롬비 경(Sir Ambrose Abercrombie)을 오랜 미국 생활 속
에서도 영국적인 태도와 습관을 견지하며 영국인으로서의 체면을 유지하는데
열중하는 “진부한 유형”으로 보고, 독창적이지도 않고 생명력이 없는 인물의
리얼리티의 부재가 이 작품을 “판타지나 익살극의 영역”에 귀속시킨다고 비판
한 바 있는데(310), 힌슬리 경의 비극은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시인 T. S. 엘리
어트(Eliot)가 진단한 황무지로 상징되는 현대를 사는 인간의 비극으로서, 워의
냉소적 익살 속에서 리얼리티가 한결 예리하게 반영되어 있다고 보아야 타당
하다. 나오미 밀쏘프(Naomi Milthorpe)의 언급대로, 힌슬리 경의 ‘권태’는 “특
3
아이러니컬하게도 힌슬리 경은 케에르케고르, 카프카, 사르트르, 조이스, 프로이트 등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노라고 데니스에게 푸념을 늘어놓는다(LO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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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현대적인” 대죄(大罪)로서, 워의 현대적 풍자는 모더니스트적인 감수성과
상통하며 현대의 종교적 위기의 문제와도 연관된다(128-29). 삶의 목표 의식
이 부재한 사회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내포된 작품의 앞부분은 특히 워가 견
지한 가톨릭 종교관과 미묘하게 얽혀 있다.
1930년 가톨릭 종교에 귀의한 후 1945년 출판된 󰡔브라이즈헤드 재방문󰡕
(Brideshead Revisited)을 정점으로 하여 종교적 문제가 작품에서 중요한 몫
을 차지하기에, 그레엄 그린(Graham Greene)과 함께 영국 문단에서는 드물게
가톨릭 소설(Catholic Novel)을 쓴 작가로 주로 자리매김 되어온 워의 위상은
󰡔사랑했던 사람󰡕의 분석에 있어 기본적인 시사점을 제공한다. 󰡔사랑했던 사람󰡕
이 출판되었을 당시의 여러 비평은 워가 가톨릭 교인이라는 전기적 사실에 상
당 부분 기대고 있다. 존 베일리(John Bailey)는 미국의 보수 잡지인 󰡔내셔널
리뷰󰡕(National Review)에 발표한 1949년 2월의 서평에서, 그린처럼 워도
󰡔사랑했던 사람󰡕에서 가톨릭 종교를 “무기이자 탐사침”(312)으로 사용했으며,
이는 󰡔사랑했던 사람󰡕의 주 무대인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을 “도덕적 판타
지”(314)의 장소로 삼아 비종교적이고 부도덕한 사회를 비판한 데서 잘 드러
난다고 평한다. 유사하게, 1949년 봄에 기고한 글에서 윌리엄 그레이스
(William J. Grace)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워가 “전통의 상실,” “지성의 상실,”
“종교적 관계항의 상실”이 “개별적 인간의, 그리고 공동체의 양심을 묶을 수
있는 어떤 유대도 남겨두지 않은” 시대에 대한 통찰을 보여 주었다고 언급한
다(34). 워는 “양날의 풍자”를 통해 󰡔사랑했던 사람󰡕에서 삶에서 뿐만 아니라
죽음에 있어서도 위엄(dignity)을 허락하지 않는 할리우드, 나아가 “정신적으로
나 미학적으로 하찮은” 당대 세계를 비롯하여 무의미성에 사로잡혀 있는 부르
주아 세계를 투시하고 이를 비판하였다는 것이다(Grace 34).
워의 가톨릭 종교관은 직접적으로 󰡔사랑했던 사람󰡕에 드러나지는 않는다. 할
리우드의 비인간적인 사회를 전후 종교적 나침반이 부재한 세계와 병치시키며,
종교와 관련된 신랄한 패로디를 통해 우회적으로 작가의 종교적 관심사가 전
달될 뿐이다. 워는 힌슬리 경의 입을 빌어 30년대 이후 대두한 미국에서의 신
청교도주의(New Puritanism)의 유행을 비판한다. “‘가톨릭 품위 연맹(Catholic
League of Decency)을 만족시키고자 올해에는 [메갈로폴리탄 영화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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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한 영화만을 만들고 있기’”(LO 13) 때문에 힌슬리 경이 발탁하여 스타덤
에 올려놓은 배우 와니타는 붉은 머리칼의 아일랜드 처녀로 이미지 변신을 해
야 하고, 이러한 새로운 유행에 발맞추지 못해 해고되어 버린 힌슬리 경에게는
가톨릭교 최대 죄악인 자살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4 이 부분에서 암시 되듯
이, 워는 종교적 교리의 옹호 보다는 예술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종교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종교의 오용에 대한 은밀한 분노를 표현한다. 영화 검열의 주체
로 군림하여 힌슬리 경의 파국을 몰고 온 가톨릭의 폐해를 고발하며, 작가 워
는 패트릭 디어(Patrick Deer)가 언급한대로 1940년대의 “일반 대중의 신 청
교도주의에 맞서 자신만의 전투를 무대에 올린”(218) 셈이다. 또한 이 부분에
서 들리는 워의 예술의 자율성 옹호의 목소리는 그가 옥스퍼드 대학 졸업 후
쓴 글―「라파엘 전파에 대한 에세이」(“An Essay on the Pre-Raphaelite
Brotherhood”)―에서 엿보이는 유미주의자적인 태도를 상기시킨다.5
할리우드뿐 아니라, 힌슬리 경의 종국의 안식처이자 이 소설에서 상당히 중
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 역시 종종 워의 종교적 입장과
맞물려 고찰되어 왔다. 워의 가톨릭 종교관이 작품에 투사되어 있다는 점 때문
에 워를 비판한 평자 중, 미국의 저명한 맑스주의(Marxist) 비평가 에드먼드
윌슨은 “조경술과 할리우드의 거창한 의식의 온갖 재료를 오용함으로써 죽음
의 문제를 덜 불쾌하게 옮겨내려고 한 캘리포니아의 고급 묘지,” 즉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에 대한 워의 풍자는 “사제처럼 [독자를] 인도하려는” 워의 종교
적 신념의 소산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316; Farrelly 재인용). 1948년
11월 20일에 󰡔타임즈 문학 증보판󰡕(Times Literary Supplement)에 기고한
익명의 평자도, 윌슨과 유사하게, 󰡔사랑했던 사람󰡕에서 워가 “구약성서의 예언
자”(307)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논평한다. 그러나 이 비평가는 윌슨과는
상이한 결론을 내린다. 워의 가톨릭주의는 고급 공원묘지의 부조리한 시도보다
4
‘가톨릭 품위 연맹’(Catholic League of Decency)은 불쾌하고 불건전한 내용을 다루는 영화
를 몰아내고자 1933년에 미국에서 실제로 창건되었던 ‘가톨릭 품위 유지군’(Catholic Legion of
Decency)을 분명 상기시킨다.
5
데이비스는 「에블린 워의 청중들」(“Evelyn Waugh’s Audiences”)에서 워의 삶과 작품을 간
략한 소개하며, 워의 라파엘 전파에 대한 관심사를 언급한 바 있다(77). 그러나 그는 󰡔사랑했던 사
람󰡕에서의 가톨릭 종교 혹은 유미주의적 경향에 대해 논평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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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비이성적이고 우스꽝스럽다는 윌슨의 냉소적인 평가와는 달리, 이 익명의
필자는 워가 “영혼(spirit)의 적들에게 줄곧 가해 온 가장 충격적이며 노골적인
공격”(305-06)을 함으로써 가톨릭으로서의 소명을 완수하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작가의 ‘예언자’나 ‘사제’의 역할을 강조한 이들 비평가는 워의 종교
인으로서의 시도에 대해 상반되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들은 작가의 성향
에 비추어 작품을 읽어 󰡔사랑했던 사람󰡕을 ‘종교적인’ 소설로 환원시킴으로써
워를 예술을 종교의 시녀로 삼는 글쟁이나 엘리트적인 도피주의에 탐닉했던
부르주아(bourgeois)로 폄하하였기에 두 비평의 객관성은 의문시된다.
윌슨을 인용하며 윌슨 같은 뛰어난 비평가가 워의 가톨릭주의에 기대어 작
품을 해석하려 한 시도를 비판한 존 파렐리(John Farrelly)의 1951년의 서평
은 눈길을 끈다. 그는 “죽음으로 인한 신체적 소멸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규
탄”하는 이야기로 󰡔사랑했던 사람󰡕을 읽으며, 이 소설을 굳이 워가 지닌 “교리
나 특정한 종교적 믿음을 들먹여 [논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317). 작가의
종교적 소신을 작품 분석의 토대로 삼지 않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
으나, 파렐리는 현대인의 무의미한 삶을 종교적 화법으로 풀어내며 작품 곳곳
에 워가 심어 둔 종교적 인유와 풍자를 무시하였다. 또한 작가 워가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를 ‘영혼의 적’으로 간주하고 “현대 문명 전반에 드러나는 허세 속
의 숨은 공허함을 폭로”(306)했다고 본 󰡔타임즈 문학 증보판󰡕 익명의 비평가
는 이 작품에 드러난 워의 복잡 미묘한 종교적 자세를 간과하였으나, “위트,
풍격(風格), 그리고 거리를 유지한 분노”를 통해 워가 “진정한 풍자가”의 면모
(305)를 보인다는 점을 온당하게도 강조하였다.
워의 종교적 인유는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 공원묘지의 설립자, 자칭 “선지
자”(The Dreamer)인 윌버 켄월시(Wilber Kenworthy)가 신의 계시를 실현하
는 예언자로 형상화되는 데서도 드러난다. 공원 정문의 대리석에 새겨 넣은 그
의 ‘꿈’ 이야기는 다분히 광신자의 몽상을 연상시킨다.
보라! 나는 꿈을 꾸었노라. 내 꿈속에서 행복에 바쳐진 신천지를 보았노라. 자연
과 예술이 인간의 영혼을 고양시키려 하는 가운데, 나는 수많은 고인들의 복된
복음자리를 보았노라. 그리고 먼저 간 고인들을 자신들로부터 갈라놓은 좁은 강
기슭에 아직도 서 있는 유족들을 보았노라.
모더니스트 풍자소설로 읽는 에블린 워의 󰡔사랑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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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old I dreamed a dream and I saw a New Earth sacred to HAPPINESS.
There amid all that Nature and Art could offer to elevate the Soul of
Man I saw the Happy Resting Place of Countless Loved Ones. And I saw
the Waiting Ones who still stood at the brink of that narrow stream that
now separated them from those who had gone before. (LO 48; 원문 강조)
고인을 ‘사랑했던 사람’(the loved one)으로, 유족을 ‘기다리는 사람’(the
waiting one)으로 규정하면서, 살아있는 사람이 가기를 고대하는 행복한 곳으로
자신의 공동묘지를 홍보하는 켄월시의 글은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를 천국으로
미화한다. 성서에 뒤이어 서구인의 애독서였던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의 한 구절을 연상시키는 이 서술은 존 버니언(John Bunyan)의 문체
를 모방하지만, 온갖 시험을 거쳐 고난을 이겨내고 천국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
준 버니언의 신심은 세속적인 상술의 수단으로 변질되어 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아름다움과 행복”을 부여하고 “사랑했던 사람이 바로 옆에 있다는 인식으
로 행복한” 공원묘지(LO 49)를 강조하는 켄월시는 사이비 예지자로, 전통적 종
교를 거짓 위안과 안식으로 대체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을 ‘죽음을 기다리는 사
람들’로 만듦으로써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몽상가는 현대인이 죽은 자와 별반 다
르지 않은 피폐한 현실을 투사한다. 짐짓 진지하고 종교적인 켄월시의 용어 속
에서, 역설적으로 그는 모더니스트 풍자가의 익살스러운 해학의 대상이 된다.
풍자가의 재기발랄한 어조로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를 다각도에서 상세히
그림으로써, 워는 현대의 사이비 종교적 성향을 고발한다. 종교적인 가면 아래
에는 현대 물질만능주의와 세속적인 불멸에의 희구, 즉 영생을 향한 왜곡된 의
지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폭로하는 것이다. 에이메를 “북적거리고, 위생이
철저한 에덴동산(Eden)의 하나뿐인 이브(Eve)”(LO 66)로 서술하는 부분에서
암시되듯이, 천국이자 타락 이전의 에덴동산의 이미지로 채색된 ‘속삭이는 숲
속의 빈터’에는 분명 종교적 인유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몽상가’의 야심찬
기획 아래 세워진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는 영혼의 안식 대신 묘지의 영생을
약속한다. “최고급 강철과 콘크리트로 지어져” “화재와 지진에도 안전하다는
점을 보증하고,” “핵분열”마저도 견딜 수 있다고 광고되는 이 공원묘지의 건물
(LO 50-51)은 생명을 향한 신앙이 현대의 기계, 과학 문명에의 믿음으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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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된 시대의 상징물이다.6 게다가 구획 지어져 있고 묘지 터와 관의 크기와 종
류에 따라 등급과 가격이 정해져 있는 이 대규모 공동묘지는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 장례업체가 지극히 현세적인 가치를 숭배하고 있다는 점을 증명한다.
공원묘지는 볼거리와 즐길 거리로 가득 차 있다. 예스럽게 장식한 참나무 실
내장식, 채색된 피륙, 푹신한 카펫, 조지(King George) 왕조풍의 계단 등으로
안락하고 고풍스럽게 장식된 본관 건물은 물론,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W. B.
Yeats)의 시에 등장하는 목가풍의 장소인 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Lake Isle
of Innisfree), 시인 로버트 번스(Robert Burns)를 연상시키는 스코틀랜드 교
회(wee kirk of Auld Lang Syne), 옥스퍼드 대학의 교회(Oxford's Christ
Church), 로댕(Auguste Rodin)의 유명한 조각품 키스(Kiss) 등, ‘소곤거리는
숲속의 빈터’는 영국과 유럽의 문화적, 문학적 유산인 건물, 예술품, 풍경의 복
제로 채워져 있다. 잎이 무성한 나무 뒤에 감춰진 스피커에서는 각양각색의 장
소에 맞게 선곡된 음악이 흐르며, 백인들만 안치될 자격이 주어지는 이 “제한
된 공원[묘지]”(LO 55) 내에서 죽음과 고통을 상기시킬 십자가와 화환은 금지
되어 있다. 작은 오두막집, 아홉 이랑의 콩밭, 꿀벌이 윙윙대는 소리 가득한 숲
속의 빈터(glade), 새소리 들으며 평화를 안기는 목가적인 장소를 그대로 모사
하면서도 벌침의 위협을 막고자 살충제를 사용하여 진짜 꿀벌은 근절시키고
있는 ‘이니스프리의 호도’는 고난과 죽음을 연상케 하는 온갖 것들을 가리고,
감각적 즐거움을 선사하도록 치밀하게 설계된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의 실체
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밀회를 즐기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활용되는 ‘이
니스프리의 호도’는, 조지 맥카트니(George McCartney)가 예리하게 지적하였
듯이, 이 공원묘지가 백인들의 일종의 “디즈니랜드 테마 파크”(145)로 고안되
어 있다는 사실을 예증하는 것이다.
6
남가주(Southern California) 글렌데일(Glendale) 지역의 포레스트 론 기념 공원묘지(Forest
Lawn Memorial Park)를 보고 나서 1947년 9월에 발표한 글, 「안락한 죽음과 반쯤 사랑에 빠
져」(“Half in Love with Easeful Death: An Examination of Californian Burial Customs”)에서
워는, 이 묘지의 설립자가 주장한 바와 같이, 진보된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파괴 불가능한 강철과
콘크리트로 만든 이 묘지에서 전통적인 가치가 전복되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신체는 부패하
지 않고, 계속 살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멋진 것으로 되었다”(337)고 비꼬며, 워는 영혼보다 신
체의 보존을 더 신경 쓰는 이 공원묘지를 물질 중심적이고 종교와 무관하게 된 세태의 표상으로
비판 하였다. 이 공원묘지가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의 모델이라는 점은 명백해 보인다.
모더니스트 풍자소설로 읽는 에블린 워의 󰡔사랑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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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지적, 문화적 유산의 역사적 맥락은 누락한 채 키치(kitsch)식 저열
한 모방으로 채워진 공원묘지는7 미국의 유럽에 대한 열등의식과 그 보상 심
리를 은연 중 드러낼 뿐 아니라, 망자(亡子)의 안식보다는 세속적인 영생불멸
을 약속하며 산 자의 재력의 과시수단을 제공한다. 제임스 린치(James J.
Lynch)가 간파한 것처럼,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는 “천박하고 빌려온 문화의
신격화”를 지향하며, 영생 추구의 공허성을 드러내는 “아이러니를 내재한 상응
물”로서 기능한다(31). 철저하게 연출된 천국, 혹은 에덴동산의 가면 뒤에는
상업적이고, 인종 차별적이며, 전혀 목가적이지 않은 이 공원묘지의 실체가 도
사리고 있다. 데니스가 메갈로폴리탄 영화사를 처음 방문하여 거대한 스튜디오
세트를 보고 압도 되었던 때 받았던 것과 유사한 “환상”(LO 50), 다시 말해서
거짓 위안과 꿈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영화사와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는 병치
된다. 모든 것이 치밀한 프로그램에 따라 관리, 감독되는 할리우드와 ‘속닥거리
는 숲속의 빈터’는, 브레넌이 논평하였듯이, “캘리포니아의 두 개의 거대한 거
짓 교회”(97)로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워의 다른 작품들, 󰡔브라이즈헤드 재방문󰡕, 󰡔헬레나󰡕(Helena 1950),
󰡔명예의 보검󰡕(Sword of Honour) 3부작과 더불어 이 작품을 “신이 내려준 독
특한 도전”(99)에 대한 이야기로, 즉 종교적인 서사로 해석하는 브레넌의 비평
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켄월시를 신(God)에, 공원묘지의 방부사(防腐師) 조이
보이 씨를 성 베드로(St. Peter)에 각각 대입하며, 에이메가 수치스럽게 여기
는 애완동물 납골당 근무를 그만두고 목사가 되려는 생각을 해보는 데니스야
말로 “자기 기만적인 삶”을 사는 인물의 표본으로서 “영원히 존재하는 기독교
적 가치가 어떠한 지지나 위안도 줄 수 없는” 현대의 진정한 종교성의 부재를
예증한다고 보는 시각(Brennan 98)은 워의 풍자가 지닌 복합적인 측면을 간
과한다. 데니스는 기독교적 가치의 답습이나 거부 등의 과정에 얽혀 있는 인물
로 단순화되지 않는다. 데니스의 냉소적이고 익살 어린 관찰자적인 태도는 종
종 화자의 시각과 겹쳐진다. 그의 양가적인 면이 어두운 유머로 표출되면서,
워의 모더니스트 풍자의 다층적 차원이 제시 된다.
7
T. J. 로스(Ross) 역시 워가 예술품을 키치로 만드는 현대에 대한 관심과 비판을 이 작품에
투사하였다고 언급한 바 있다(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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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데니스를 중심으로 살펴 본 풍자의 역동성
워의 풍자의 활용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평자들이 동의하나, 풍자의 목적과
태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흥미롭게도 1946년 8월 잡지 󰡔삶󰡕(Life)에
처음 발표한 글 「팡파르」(“Fan-Fare”)에서 워는 자신의 작품이 풍자적이지
않다고 말하며(303),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의 시대와는 달리 보편
적 도덕 기준이 부재하고 불안정한 현대에 풍자의 불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풍자는 시기의 문제이다. 그것은 초기 로마 제국이나 18세기 유럽과 같이 안정
된 사회에서 융성하며, 동질적인 도덕적 기준을 상정한다. 그것은 모순과 위선을
겨냥한다. 그것은 과장함으로써 정중한 잔인성과 어리석음을 폭로한다. 그것은
수치심을 만들어내려 애쓴다.
Satire is a matter of period. It flourishes in a stable society and
presupposes homogeneous moral standards―the early Roman Empire and
eighteenth-century Europe. It is aimed at inconsistency and hypocrisy. It
exposes polite cruelty and folly by exaggerating them. It seeks to
produce shame. (304)
2차 세계대전에서의 경험을 통해 “정상성(normality)이라는 것은 없다”
(“Fan-Fare” 303)는 결론에 이른 워는 모순, 위선, 잔인성, 어리석음 등을 풍
자하거나 도덕성을 진작시킬 수 없는 시대로 현대를 규정한다. 정상과 비정상
의 구별이 와해되고 절대적 기준이 부재하는 것으로 현대를 진단한 워에게서
모더니스트로서의 상당히 예리한 시각이 엿보인다. 또한 18세기 스위프트식의
풍자는 불가능하다는 워의 단언은 도덕성의 고취를 풍자의 목적이라고 보는
전근대적인 시각을 적시(摘示)한 것이다. 워는 풍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
니라, 자신의 풍자가 기존의 풍자와는 다르며, 도덕적 풍자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을 풍자가의 아이러니를 담아 지적하는 셈이다. 맥카트니가 평한 바
와 같이, 워의 풍자성의 부인(否認)은 사실 그의 “능숙한 풍자적 책략”이다(2).
맥카트니와 유사하게, 밀쏘프는 20세기에 풍자는 설 자리가 없다는 워의 발언
을 그 자체로 “세련된 풍자적 연출”(2)로 보는데, 워 특유의 “복잡하고 고도로
모더니스트 풍자소설로 읽는 에블린 워의 󰡔사랑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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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적인 비꼬기”(Milthorpe 2) 화법은 모더니스트 풍자가로서의 워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낸다.
“인간의 마음과 영혼 전체를 재현하려 하면서도 그 결정적인 특성, 즉 분명
한 목적을 지닌 신의 창조물이라는 점을 빠뜨렸다”(“Fan-Fare” 302)고 제임
스 조이스(James Joyce) 등의 모더니스트들을 비판한 워는 얼핏 반(反) 모더
니스트이자 보수주의자로 보인다. 그러나 워의 가톨릭주의는 작품 속에서 강권
(強勸)되지 않으며, 정통 교리에 의지하지도 않는다. 또한 기독교 종교와 종종
결부되는 전통주의적 도덕관에 호소하지 않는다. 게다가 절대적인 도덕적 기준
을 상정하지 않는 듯 무심히 인간의 악덕과 어리석음을 서술하는 문체로 인해
워의 풍자는 단순한 차원에서 사유될 수 없고, 모더니즘과의 연관성을 불가피
하게 내포한다. 풍자에 집중하여 󰡔사랑했던 사람󰡕을 살펴 본 비평가 스미스는
워의 문체가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았지만(312), 그 일관성 없어 보이는
서술기법이야말로 스위프트가 살았던 시대와는 달리 일관된 가치관이나 문체
와 구조상의 통일성보다는 모순과 양가성으로 특징지어지는 현대의 복잡미묘
한 정조를 재현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워가 “삶을 꾸준히 혐오하며 삶 전체
를 증오해야 하는”(312) 스위프트 같은 풍자가에 미치지 못한다며 워의 풍자
작가로서의 가치를 절하한 스미스는 모더니스트적인 워의 풍자 방식의 가치를
파악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워의 풍자는 일관된 목적을 드러내기보다는, 맥카
트니의 언급처럼 모더니스트다운 “무정부주의적인 생동감”(2)를 지닌다.
󰡔사랑했던 사람󰡕의 서사가 주로 데니스의 시선과 언행을 따라가는 점을 고
려하면, 데니스를 제대로 파악하는 작업은 풍자 대상을 다루는 워의 솜씨와 그
속에서 드러나는 워의 모더니스트적인 풍자 기법을 파악하는 데 있어 긴요하
다. 하지만 다각도에서 고찰될 수 있는 복잡한 인물인 데니스는 손쉬운 정의를
거부한다. 앞부분에서 데니스는 “최근의 전쟁”(LO 29), 즉 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 돌아 온 인물로 소개 된다. 참전하여 시를 쓰고, 시집을 출판하여 상까지
받아 이름을 얻은 덕에 캘리포니아까지 오게 되었지만, “단조롭고 임시변통의
것과 연관될 때만 불평할 뿐”이고 “천성적으로 다재다능하고 정밀”하기에(LO
29), 데니스는 셸리의 삶을 영화화하기 위한 각본을 쓰는 일을 포기하고 메갈
로폴리탄 영화사를 미련 없이 나와 애완동물 납골당을 새로운 일터로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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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성격 묘사에는 아이러니가 내포되어 있다. 그는 할리우드 영화사의 공허
하고 무용한 사업을 인지하고 배격하는 한편, ‘다재다능함’과 면밀한 성격을 황
당하게도 동물 납골당에서 발휘하는 것이다. 동물 장례업체인 ‘더 행복한 사냥
터’에서 그는 “조용한 희열”을 느낀다(LO 32). 학창 시절 그가 “교내 운동 경
기에서 명예롭게도 [부상을 당해] 자리를 절뚝이게 되어 양호실에 누워 창밖
으로 야외 활동하러 동급생들이 열을 지어 나가는 소리를 들었을 때”(LO 32)
느꼈던 것과 유사한 이 희열은 타인과 관계 맺고 어울려 지내기보다는, 거리감
을 둔 채 타인을 관찰하는 데 익숙한 데니스의 태도를 암시한다. 또한 그가
‘더 행복한 사냥터’에서 느끼는 만족감의 기저에는 “새로운 길을 탐험”(LO
30-31)한다는 흥분과 그 길이 “무한히 먼 곳으로 통해 있다”(LO 30-31)는
데서 오는 기대감이 동반되어 있다. 그의 탐험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이 작
품의 주요한 내용인데, 그 과정 중에 할리우드 영화계와 ‘속삭이는 숲속의 빈
터’ 장례업체는 필수적인 통과의례처럼 여겨지며, 데니스의 탐험의 귀결점의
논의야말로 이 소설의 풍자의 정수로 이끈다.
애완동물 납골당의 냉장고에 “두어 마리의 작은 동물의 사체”와 나란히 넣어
둔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꺼내 먹으며 영국 시선집(詩選輯)을 읽으며 만족해하는
데니스의 모습(LO 28)에서 사체에 대한 거부감이나 연민의 감정은 찾아볼 수
없다. 태양이 작열하는 캘리포니아의 날씨에도 영국식 의복과 생활방식을 고수
하고 크리켓 클럽을 통해 결속을 다지며 미국인에게 존경받는 영국인의 자존심
을 내세우며 살아가는 아버크롬비 경을 필두로 한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영국인
들의 공동체 사회에서 데니스는 영국인으로서의 품위와 체면을 손상시키며 “현
지인들처럼 살려고 하는”(LO 17) 세상 물정 오르는 젊은이로 배타시되는데, 그
런 데니스에게 집을 함께 쓰도록 배려해 준 힌슬리 경이 자살하고 이후 그를
매장하는 과정 중에 드러나는 데니스의 태도는 혐오감을 자아낸다. 데니스는 적
절한 애도의 감정이나 고인에 대한 추모의 정을 보이지 않는다.
힌슬리 경의 추도사를 구상하면서 데니스는 “튀어나온 붉은 눈동자와 검은
혀를 빼어 물고 목을 맨”(LO 101) 끔찍한 모습으로 힌슬리 경의 주검을 상기
한다.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의 장의사들의 솜씨로 변모된 사체 역시 “거북이
처럼 나이를 알 수 없는 얼굴”로 “능글맞게 웃는 음란한 졸렬한 모조품”으로
모더니스트 풍자소설로 읽는 에블린 워의 󰡔사랑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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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된다(LO 90). 힌슬리 경의 한껏 꾸며진 사체를 “포르말린 소독제에 절여
지고, 매춘부처럼 화장을 하여, 이제 새삼스러이 새우 같은 분홍빛 분을 바
른”(LO 102) 모습이라고 희화화하는 데니스의 목소리에는 그로테스크한 쾌락
의 감정마저 엿보인다.8
몰인정하고 부도덕하며 잔인하게 느껴지는 데니스는, 작품 앞부분에서 객관
적 어조로 소개된 부분에서 암시되듯이, 안이한 생활과 권태로 무뎌졌지만 감
수성이 예민하고 총명하게 보이는 힌슬리 경9과는 사뭇 다르다.
데니스는 감상성보다는 감성을 지닌 젊은이였다. 그는 스물여덟 해를 사는 동안
폭력과는 거리를 두고 살아 왔다. 그러나 그는 죽음과 대리적인 친밀성을 향유한
세대의 소산이다.
Dennis was a young man of sensibility rather than of sentiment. He had
lived his twenty-eight years at arm's length from violence, but he came
of a generation which enjoys a vicarious intimacy with death. (LO 46)
감정은 감상성으로 폄하되고 감성은 감정을 자제하는 분별력과 동일시되는 시
대에 데니스는 극히 현대적인 ‘감성’을 지닌 인물, 즉 이성적이고 자족적인 면
모를 지닌 것으로 포착된다. 감수성이 예민한(sensitive) 힌슬리 경과 달리, 데
니스의 감성(sensibility)은 서까래에 목을 맨 힌슬리 경의 시체를 목격하고
“순간적으로 기가 질렸을”(LO 46) 뿐, 주체 못할 정도의 감정의 동요를 허용
하지 않는다. 전쟁에 참여하였기에 죽음을 대리 경험한 세대의 일원으로서 데
니스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그다지 느끼지 않을 뿐더러, 죽은 자를 보고도 슬
픔이나 고통을 겪는 대신 무감각으로 자기를 보호할 필요가 우선시되는 시대
의 산물인 셈이다. “보다 평온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그러한 장면을 목
격함으로써 삶이 바뀌었을 수도 있었겠지만”(LO
46-47), 전후의 불안정과
혼란을 겪는 젊은 세대에 속하는 데니스는 힌슬리 경의 죽음이 “예상할만한
8
힌슬리 경의 사체는 “그로테스크한 유머의 지점”을 표시하기에, 작가는 이중적 풍자, 다시 말
해서 “코미디와 역겨움의 동시적 움직임”을 활용하고 있다는 밀쏘프의 논평(135)은 상당히 설득력
이 있다.
9
본고 122쪽 단락 인용 부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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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종류의 일”(LO 47)이었기에, 그 비극으로부터 스스로를 간단히 분리시킨
다. 힌슬리 경의 장례 절차를 핑계 삼아, 데니스는 자신이 일하는 동물 납골당
이 벤치마킹하고 익히 그 명성을 들어온 공원묘지를 방문할 기회가 온 것에
“기분이 들떠 호기심이 충만한 채”(LO 47)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로 향한다.
데니스가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에서 만나게 된 ‘순진한’ 미국 처녀 에이메
와의 관계는 그와 힌슬리 경과의 관계의 변주이다. 에이메는 감정적으로는 끌
리지만 자신을 유혹하려고 영국 시인들의 시를 표절하며 애정을 갈구하는 ‘부
도덕한’ 데니스와 자신이 존경하는 방부 처리 전문가이나 실생활에서는 매력
없는 조이보이 씨 사이에서 고민한다. 딜렘마에 빠져 고민하던 에이메는 사이
비 상담사 슬럼프 씨(Mr Slump)의 사악한 농담―“멋진 창문을 찾아 [그 창밖
으로] 뛰어 내리시오”(LO 171)―을 실현하듯 조이보이 씨의 작업실에서 독극
물을 주입해 자살한다. 힌슬리 경에게 추모의 정을 보이지 않은 데니스는, 에
이메가 자살한 후에 에이메를 애완동물 납골당 ‘더 행복한 사냥터’의 용광로에
넣고 “그가 사랑했던 사람의 마지막 연소를 기다리며”(LO 191; 필자 강조),
동료 직원이 놓아둔 소설책을 태연히 집어 들어 읽기 시작한다. 작품의 이 마
지막 문장에서 암시 받듯이, 에이메가 ‘사랑했던’ 사람, 다시 말해서 ‘고인’이
되고 난 후 데니스는 태평스럽기 그지없다.
데니스는 도덕성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오히려 약탈자의 이미지에 가깝다.
데니스는 에이메를 “표준화된 타입”의 안내 데스크에서 일하는 접수 담당자나
승무원 같은 미국여성과는 달리 “독특한” 여성으로,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브
(Eve)처럼 “퇴폐적인” 여성으로 분류한다(LO 65). 검고 곧은 머리카락, 넓은 이
마, 맑고 햇볕에 그을리지 않은 피부, 전형적인 미국여성과 달리 진홍빛 립스틱
을 짙게 바르지 않아 오히려 “관능적인 대화의 헤아릴 수 없는 범주를 보장하는
듯한” 에이메의 입술, 초록빛을 띠고 “광기의 풍부한 번뜩임”을 담은 초연해 보
이는 에이메의 눈동자 등, 에이메의 외모를 서술하는 부분(LO 67)은 포식자가
먹잇감을 앞에 두고 철저히 분석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해부된 에이메의 외양
묘사에서 냉소적 화자와 데니스의 목소리는 겹쳐 들린다. 단조로운 삶을 타파해
줄 무언가를 찾고 있는 데니스에게 에이메는 적절한 희생 제물로 선택된다.
데니스는 종교적 신념이 없고, 양심의 가책이나 도덕적 평가에서 자유롭다.
모더니스트 풍자소설로 읽는 에블린 워의 󰡔사랑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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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메의 마음을 사로잡는 “판매기술”(LO 125)로 데니스는 영국시선집에 나
온 영국 시인들의 시를 내키는 대로 표절하고, 들켰을 때에도 “내 고향인 죽어
가는 세계에서는 인용이 국가적인 악덕이야”(LO 162) 라며, 자신을 변호한다.
에이메가 조이보이 씨와 함께 그의 어머니가 키우던 앵무새 삼보(Sambo)의
장례를 치르러 ‘더 행복한 사냥터’에 들렀을 때, 본업을 들킨 데니스는 “[앵무
새의] 근사한 작은 관 너머에서 윙크를 날린다”(LO 159). 에이메가 동물 납골
당을 경멸하자 데니스는 신을 믿지 않으면서도 거리낌 없이 무교파
(non-sectarian) 목사가 될 마음을 먹는다. 또한 그의 부도덕한 행실이 드러난
후 에이메가 조이보이 씨와의 결혼을 꿈꾸자 데니스는 에이메를 순순히 놓아
주지 않는다. 데니스는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에 마련된 스코틀랜드 풍 교회에
서 “번즈(Robert Burns) 혹은 브루스(Bruce)의 심장을 사이에 두고 키스하
며”(LO 167)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교환했던 일을 에이메에게 상기시킴으로
써, 에이메의 마음 속 갈등을 부추기고 결국 그녀를 자살로 몰고 가는 데 큰
몫을 담당한다. 에이메가 죽은 후의 그의 행각은 그의 ‘퇴폐적’인 행위의 정점
을 드러낸다. 그는 에이메의 죽음에 전혀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직장에서 자
신의 위상이 손상될까 두려워 ‘더 행복한 사냥터’를 찾아가 에이메의 사체를
처리해달라고 데니스에게 애걸하는 조이보이 씨를 데니스는 자신의 안위를 위
해 십분 활용한다. 조이보이 씨의 청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데니스는 영국으
로 돌아갈 선박의 특등석 좌석표와 여분의 돈을 받는다. 게다가 영국인 망신시
키는 짓을 멈추도록 아버크롬비 경도 데니스에게 수표를 끊어주며 영국으로
돌아가게 도와줌으로써, 데니스는 미국에 올 때처럼 폼 나게 영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차갑고 무감각한 데니스의 태도는 인간의 희비극에 감정적으로 관여
하지 않고 거리감을 유지하는 화자의 태도와 종종 포개진다. 데니스를 냉혹한
이기주의자라고 비난할 수만은 없는 이유는 그의 지적인 통찰력이 화자의 시각
을 상당 정도 대변해주기 때문이다. 데니스는 힌슬리 경을 “카이저의 씨 없는
복숭아(Kaiser’s Stoneless Peaches)”(LO 100)에 병치시킨다. 고기 대신 견과
류를 넣어 건강에는 좋으나 맛은 없는 넛 버거(nut burger)와 마찬가지로 씨
없는 복숭아와 같은 힌슬리 경은 허상의 세계 속에서 생명력이 고갈된 채 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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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추구하며 손쉬운 만족과 타협한 채 무기력하고 권태로이 살아간 인물로 평
가된다. 작가 워의 분신인 양, 데니스는 당대 문화의 비평가로서 기능한다. 씨
가 없어 먹기에는 간편하나 생명의 원천인 씨가 없는 탓에 “축축하고 달달한
솜뭉치”(LO 102)에 불과한 씨 없는 복숭아의 비유를 통해 데니스는 허깨비 같
은 현대 인간의 전형이자 한낱 소모품에 불과했던 힌슬리 경의 삶을 요약해주
고 있는 것이다.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에서의 사체 화장술 덕에 분홍빛 새우
처럼 젊음을 획득한 힌슬리 경은 핵폭탄에도 파괴되지 않을 묘지터에 안장되나,
그의 영생은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와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 허상인 셈이다.
부조리한 상황에서 자살을 택하고 조이보이 씨나 데니스 모두에게 버림받고
언제든 “교체 가능한 상품”(McDonnell 206)에 불과한 위치로 귀결되는 에이메
는 비감을 자아내야 할 불쌍한 인물이나, 화자는 그녀의 청교도적이고 도덕적인
표면 아래 숨은, 속물적인 싸구려 문화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하는 우둔함을 가차
없이 벗겨내며 오히려 그녀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다. 에이메는 사랑과 영원성
의 모조품에 불과하고 거짓 신성함을 외피로 가지고 있을 뿐인 ‘속삭이는 숲속
의 빈터’를 “[자신의] 진정한 집”(LO 115)으로 받아들이며,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에서 일하는 이유가 “돈 때문이 아니다”(LO 112) 라고 강조하지만, 금전
과 관련된 언급이 그녀의 대화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그녀는 냉소적이고
혼전순결을 방해하는 인물이라며 데니스를 비난하고 스스로를 “윤리적인”(LO
121) 인물로 차별화하지만, “사냥하는 식인종의 무자비한 비밀”로 남자를 효과
적으로 유혹할 수 있다고 광고되는 “정글의 독약”(Jungle Venom)이라는 이름
의 향수를 뿌리고 조이보이 씨와 데이트 하러 나간다(LO 131).
에이메 타나토제노스는 로스엔젤리스의 언어를 썼다. 그녀 마음의 빈약한 가구―
침입자의 정강이에 대고 짖어대는 그 물체―는 그 지방의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획득한 것이었다. 그녀는 광고를 따라 옷을 입고 광고를 따라 향수를 뿌리며 세
상에 자신을 드러내었다. 두뇌와 신체는 규격 제품과 거의 다를 바 없었다.
Aimee Thanatogenos spoke the tongue of Los Angeles; the sparse
furniture of her mind―the objects which barked the intruder's shins―had
been acquired at the local High School and University; she presented
herself to the world dressed and scented in obedience to the
모더니스트 풍자소설로 읽는 에블린 워의 󰡔사랑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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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vertisement; brain and body were scarcely distinguishable from the
standard product. (LO 156)
에이메는 물질 중심적이고 속물적이며 생명력을 상실한 문화에 동화되고 그를
답습하며, 또한 자기 기만성을 내재한 인물이다. 예술을 사랑하고 자신이 예술
적 취향을 지녔다고 생각하지만 에이메는 조이보이 씨가 데니스의 영시 표절
을 알려줄 때까지 테니슨(Alfred Lord Tennyson)이나 키이츠(John Keats)등
유명한 시인의 시구를 알아채지 못한다. 그녀의 ‘예술’은 시체를 뽀얗게 화장하
고 머리카락을 빗겨주는 일에 불과하다. 조이보이 씨가 에이메의 독살(毒殺)
사실을 알리자 데니스가 “넛 버거(nutburger) [때문]에?”(LO 178) 라고 반응
하는데, 작가의 대변인으로 기능하는 데니스가 투시하듯이, 에이메는 무의미한
삶에 종속되어 온 셈이다. 뿐만 아니라 자살 직전에 에이메가 듣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카이저의 씨 없는 복숭아’ 광고가 암시하듯이(LO 168), 힌슬리 경
과 병치되는 에이메는 유해한 현대적 편의성과 무가치한 가치의 맹신자로 결
국 그 희생양이 된다. 더구나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에서 “수녀처럼 일했
던”(LO 83) 에이메는 조이보이 씨의 방부 처리실에서 청산염의 독이 퍼져 나
가는 동안 그녀의 “조상들의 영혼들(spirits)과 얘기를 나누며”(LO 173) 마침
내 자신의 영혼의 고향인 그리스(Hellas)로 복귀한다. 에이메의 최후를 서술하
는 부분―고뇌의 원흉이던 두 남자는 잊혀지고 마침내 “문제는 자신과 그녀가
모시던 신령(deity) 사이에 놓인다”(LO 175)―은 비애감을 부여하기보다는, 빈
정거리는 어투를 통해 그녀의 우둔함을 상기시킨다.
에이메를 통해 가톨릭과 대립되는 그리스적인 장소로 ‘속삭이는 숲속의 빈
터’를 상정함으로써 작가 워는 거짓 종교에 빠진 어리석은 인물로 에이메를 희
화화한다. 자클린 맥도널(Jacqueline McDonnell)은 에이메가 슐츠 씨의 조언
을 따라 빌딩에서 몸을 던지지 않고 자신의 진정한 ‘집’인 공원묘지에서 숨을
거두었기에, ‘남다른 영혼’의 소유자로서 스스로 그리스적 비전을 선택, 수용한
것이라고 논평하지만(113), 에이메의 “영혼만은―아, 영혼만은 남다른 점이 있
었다”(LO 166)는 화자의 서술에는 데니스 식의 어두운 유머가 숨어 있다. “살
아 있는 사람의 얼굴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LO 103-04) 그녀의 특성에서 암
시되듯이, 에이메는 영혼의 자유와 생명력을 지니지 못한 채 현대 상업주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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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갈망하는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의 숭배자로 자리매김 된다. 에이메는
생명 없는 죽은 사람들의 세계에 더 근접해 있다. “나는 그녀가 전적으로 정신
이 멀쩡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LO 179)는 데니스의 평가는 작가의 관점을
요약한다.10 에이메는 비극적 인물의 반열에 들어가지 못한다. 독자는 동정의
시선을 보내는 대신, 거짓 종교의 대변자에게 속은 에이메의 죽음을 불가피한
그녀의 운명의 몫으로 수용하고, 작가의 냉소적 유머를 즐기도록 유도된다.
조이보이 씨 역시 신랄하게 비판된다. 데니스가 통찰력 있게 요약하듯이, 조
이보이 씨는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의 화신”이자 “켄월시 박사와 보통의 인류
사이를 중재하는 로고스”이다(LO 166). 말미에 자신의 직업과 명성을 지키고
자 에이메를 ‘더 행복한 사냥터’에서 비밀리에 화장해 달라고 데니스에게 울면
서 구걸하는 모습에서 조이보이 씨의 참모습이 드러난다. ‘청교도적인’ 조이보
이는 에이메와 마찬가지로 작가의 풍자적 조소의 대상이 된다. 이름이 암시하
듯이, 조이보이 씨는 ‘어린아이’(boy)처럼 책임을 회피한다. 자신의 “사랑하는
아기(honey-baby)”(LO 178)였던 에이메를 냉장통에 운반하여 동물의 사체와
함께 화장시키는 조이보이 씨는 위선과 잔인성을 노출 한다. 그의 부도덕한 이
면이 폭로되면서, 독자는 데니스가 그에게 가한 짓궂은 장난을 그가 받아 마땅
한 형벌로 받아들이게 된다. 데니스가 기획한대로 ‘더 행복한 사냥터’에서 애완
동물을 장사지낸 고객에게 으레 보내는 추모엽서―“앙징맞은 에이메가 당신을
생각하며 오늘밤 천국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어요”(LO 190)―는 매년 조이보이
씨에게 전해질 것이고, 조이보이 씨는 매년 죽음의 상징(momento mori)인 ‘사
랑했던’ 에이메를 상기하며 삶을 이어가야 하는 운명을 할당 받는다.
거리를 두며 절대적 가치를 유보하는 모더니스트 풍자작품의 기본적 속성
인 어두운 유머는 에이메와 조이보이 씨에 적용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냉소
적 유머를 나누며 화자의 시각을 대변하는 데니스 역시 신랄한 풍자의 대상
에서 완전히 비껴나 있지 않다. 거짓된 가치와 무의미한 세계의 상징인 ‘속
삭이는 숲속의 빈터’는 에이메나 조이보이 씨뿐 아니라 “그[데니스]를 사로
10
로스는 에이메의 묘사에 작가의 동정심이 내포되어 있으나, 에이메의 ‘광기’의 언급이 암시하
듯이 작가의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평한다(158). 그의 논평은 모더니스트로서의 워의 양가적
태도를 상당정도 인정한 셈이다.
모더니스트 풍자소설로 읽는 에블린 워의 󰡔사랑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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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았다”(LO 94).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의 모조품들이 “원래 작품보다 더
터무니없거나 더 최면을 거는 듯하다”고 평한 데니스(LO 94)는 이 공원묘지
의 최면에서 온전히 해방되어 있지 않다.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에서 행해진
것은 더 행복한 사냥터에서도 행해져야만 한다”(LO 163)는 데니스의 소신
은 그가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에서 죽은 그의 ‘애인’ 에이메를 ‘더 행복한
사냥터’에서 한줌의 재도 남기지 않고 태워 버리는 마지막 부분을 통해 실현
된다. 데니스야말로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의 무자비한 사랑과 죽음 지향적
비전의 화신일 수도 있다는 의구심이 부조리하고 익살스러운 상황 속에 녹
아들어 있다.
에이메가 애완동물 납골당에서 간단히 처리되는 말미는 데니스와 조이보이
씨의 사냥감이자 애완동물에 불과했던 그녀의 정체성을 마침내 드러낸다. ‘더
행복한 사냥터’와 ‘속삭이는 숲속의 빈터’의 병치는 에이메를 통해 실현되며, 2
차 세계대전 후 현대 세계에서의 인간과 동물의 모호한 경계와 사랑의 불가능
성이 환기된다. 동물 장례업체의 사장 슐츠 씨(Mr Schultz)가 지적하듯이, 사
람들은 애완동물을 자신의 아이인 것처럼 말을 걸고 사랑하는 척하지만, 눈물
을 한바탕 쏟고 나서는 “묘비가 진정 [이] 사회에서 필요한가요, 슐츠
씨?”(LO 73) 라며, 장례비용을 아까워한다.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병들거
나 건강할 때나, [주인을] 사랑했고, 늘 곁을 지켰고, 결코 묻지도 않고, 결코
불평하지도 않았던” 애완동물은 결국 “동물처럼 묻힐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
임을(LO 74) 이 작품은 꼬집는다. ‘사랑했던’ 동물, 즉 에이메의 장례는 값싸
게 치러진다. 에이메가 동물 사체와 함께 용광로에서 소각될 때, 동물이건 인
간이건 사랑했던 존재에 대한 예의와 현대 세계에서의 사랑의 본질에 새삼 주
의를 돌리게 되는 것은 작가가 보여준 현대에 대한 통찰력이 진정한 가치의
부재에 대한 풍자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워는 「팡파르」에서 풍자의 불
가능을 언급했지만, 도덕적으로 절대적 기준을 상정하기 어려운 현대에도 모순
과 위선을 겨냥한 풍자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과장과 희화화를 통해
인간의 잔인성과 우둔함을 폭로한 그의 풍자는 굳이 도덕성을 거론하거나 종
교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에 함몰되지 않고서도 진정한 삶과 사랑의 문제를 숙
고하게 한다. 모더니스트 풍자 속에서 워는 비감과 희극을 교차시키며, 현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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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악과 피폐한 문명을 반성하고, 우리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IV. 맺으며
할리우드와 포레스트 론 공원묘지를 실제로 방문하고 난 후 이 중편소설을
쓸 수 있었던 작가 자신을 상기시키듯, 데니스는 그의 미국 여정을 마치면서
“무형의 커다란 경험 덩어리, 예술가의 짐”을 가지고 영국으로 돌아가 “비전의
순간”을 맞이하기를 꿈꾼다(LO 190). 에이메의 죽음은 데니스의 영국행과 시
인으로서의 경험과 성장에 필수적이었던 셈이다. 진부하게도 여성의 죽음과 희
생이 데니스의 예술가로서의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성 작
가 워의 한계를 엿보는 것 같아 씁쓸한 뒷맛을 남기지만, 흥미롭게도 데니스를
통해 워는 자기 스스로를 희화화하는 모험을 감수하는 듯하다. 워가 도덕성을
고양하는 따위의 기존 풍자적 방식을 배격하고 설교하려 들지 않는다고 평하
며 그러한 도덕성으로부터 자유로웠던 데니스야말로 “워 자신의 관점의 체현”
이라고 본 린치의 평(45)은 완전한 오독은 아니지만, 온전히 균형 잡힌 평가
역시 아니다. 데니스는 작가 워의 대변자이면서 동시에 조롱의 대상으로, 모더
니스트로서의 워의 이중적 태도의 소산이다.
워는 진정한 절대적 가치가 부재하는 세계에 안타까움을 느꼈으나, 종교적
행동을 옹호하거나 모범이 될 만한 인물을 상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밀쏘프가
언급하듯 “표면상 도덕적 기준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는”(4) 워의 텍스트에는
모더니스트 풍자가로서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바라 본 20세기 중반 서구에 대
한 냉철한 판단이 담겨 있다. 할리우드와 공원묘지로 대변되는 물질주의 사회
가 절대성을 향한 중심축이 없이 덧없고 신체적인 만족만을 강조한다는 점을
워는 희화화와 아이러니를 통해 폭로하였다. 워는 비극적 상황 속에 농담과 어
두운 유머를 섞어 넣으며, 현대 문명의 허위성에 대한 비판, 인간 사이의 진정
한 사랑의 부재, 생명력이 고갈된 미래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다. 조나단 그린
버그(Jonathan Greenberg)가 간파한대로, 워는 도덕적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기보다는 “장난스럽고 종종 파괴적인 형식,” 즉 이중적 풍자 양식을 사용하여
모더니스트 풍자소설로 읽는 에블린 워의 󰡔사랑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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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전복적인 수단”으로 “보수적인 목표를 고취하는 데 활용”(4)하였다고
보아야 타당할 것이다.
󰡔사랑했던 사람󰡕에서 워의 설교를 기대할 필요는 응당 전혀 없다. 현대사회
에 대한 통찰력 있는 비판을 감싸 안은 워의 위트와 언어의 탁월성은 우리에
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워의 풍자적 문체는 그의 정치성을 숨김으로써 상충되
는 평가를 이끌어내기도 하지만, 모더니스트적인 그의 풍자 작품은 웃음 속에
서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비판할 기회를 분명 제공한다. 개인의 정체성
상실, 생명 경시, 죄의식과 양심의 부재, 진정한 사랑에 대한 믿음의 상실, 지
루하고 반복적인 틀에 박힌 일상의 영위 등, 이 소설에서 드러나는 추악한 인
간의 행태와 사회 모습은 전후 인간과 사회의 피폐함에 기인하는 바 크지만,
21세기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반향을 일으킨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문제, 다시 말해서 사랑과 죽음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워가 󰡔사랑했던 사람󰡕에서 보여 준 통찰력과 인간 운명에 대한 비전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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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스트 풍자소설로 읽는 에블린 워의 󰡔사랑했던 사람󰡕
박은경
주소: 34134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학로 99 충남대학교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
이메일: [email protected]
논문접수일: 2017. 10. 14 / 심사완료일: 2017. 11. 04 / 게재확정일: 2017.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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